언제부턴가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게임, 음악을 통틀어 '콘텐츠'라고 부른다. 영어지만 외국인은 안쓰는 이상한 단어다. 시리즈물이 나오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그 시리즈물이 대개 웹툰이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이 작품들의 2차, 3차 저작물로 게임을 만들고, 작품에 삽입되는 OST도 수익에 한몫을 하고 있으니, 모두 콘텐츠로 통틀어 생각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 과연 지금 영화와 드라마가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영화는 작가의 예술이었다. 드라마는 조금 다르다. 드라마는 작가의 힘보다 방송국의 규제가 더 크다. 방송국은 드라마에 광고를 삽입하고, 한국의 주요 관광지를 노출하고,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을 규제하고, 배우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면에서도 개입한다. 공영 방송은 오락성이 아닌 공익성에 중점을 둔다. 반면 극장은 티켓값과 시간표 편성을 담당할 뿐 영화 제작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티켓값의 일부는 영화산업 발전기금으로 모금되니, 법적으로 티켓 수익의 일부가 창작 진흥의 목적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영화는 드라마보다 자유로웠다. 기생충과 올드보이를 똑같은 내용으로 10부작으로 나누어 방송국 드라마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최근에는 방송국이 레거시가 되고, 넷플릭스같은 인터넷 기업들이 예전의 방송국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해서, 유통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시청자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소유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서 사용자가 좋아할만한 작품을 추천해주는 것. 좋아하지 않을만한 작품은 노출시키지 않는다. 2시간짜리 영화 1편이 이나리 50분짜리 6부작 시리즈를 기획해서 서비스 접속 빈도와 체류시간을 높인다. 이런걸 보면 지금의 OTT가 과거의 방송국처럼 어떤 규제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리즘이 노출하지 않는 작품은 아예 유저에게 도달할 수가 없으니, 사용자는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범위 안에서만 선택권을 지닌다. 그 안에서 선택한 행동은 또다시 데이터화되어 '취향'으로 학습된다. 사용자는 자기 취향을 자기가 결정할 자유가 없다. 어떤 처음보는 작품을 두고 그것을 볼지 말지 망설일 자유가 없다. 각종 시청 데이터 분석 결과를 기획에 반영하거나 접속빈도를 높이기 위해 N부작 형식으로 각색하는 것도 작가가 아닌 플랫폼의 영향이다.
사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항상 세상과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글에 반영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경써야하는 대상이 작품의 수용자인 것과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IT기업인 것은 조금 다른 얘기다.
21세기의 특징은 2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세계화, 다른 하나는 정보화. 대학에서 공학을 배워서 그런지 정보화의 영향력이 참 무시할 수 없도록 크다는 것을 체감한다. 정보화 시대에 영화 산업, 예술 산업, 미디어 산업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 바람직할지. 어차피 모든 회사는 언젠간 망하니까 넷플릭스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무슨 영상을 보면서 울고 웃을까? 내가 할머니가 되면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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